1960년대부터 농촌 마을에는 "청년 이장"들 등장. "근대 교육의 이수자들". 한국전쟁 기간 국가의 강력한 국민화 프로그램을 첫 번째로 이수한 세대. 국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자신감과 헌신성 가지고 있었음. 이것 외에 그들의 군대 경험은 "도시성과 근대성을 몸소 체험하는 계기였다." 군대 경험이 한국 근대화에서 일종의 긍정적 적극적 계기로 작용.
[[한국]]
일본 근대에서 군대는 그 이상. "일본의 군대는 전쟁만을 위한 집단이 아니라 일본의 사회구조 전체를 지탱해 온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전戰前의 일본 군대인 '대일본제국육해군'은 무엇보다도 **천황의 군대**였음.천황 이외의 어떠한 정부 기관도 육해군에 관여할 수 없게 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육해군은 점차 정부와 의회에 의한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어, 러일전쟁 이후에는 정치세력화한 독자적인 군부가
산업화의 척도 중 하나는 **도시 거주 인구 비율이 50퍼센트가 넘는가**이다. 영국은 1850년대 도달. 일본은 1930년대, 한국은 1960년대에 이 수준에 도달함. 이들 후발 산업국에서도 폭력성은 여지 없이 드러남. 그 폭력성은 이른바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밀고 나간 독재자들에 의해, 그리고 그 독재자들의 의지를 구현하는 특정 집단에 의해 주입됨.
[[독재자]]
군대에 의한 사회의 근대화는 주로 어떤 측면에서 나타나는가? 그것은 우선 "시간·신체·언어"에서의 급격한 변화로 나타남. "군대는 공장·학교와 함께 인간을 근대적 시간질서에 맞추어 훈련시키는 중요한 장소"였으며, 이는 '생활의 시계화'로까지 이어졌음.
[[규율화]][[근대적 시간질서]]
"군대가 '문명 개화'의 추진력이 되었다고 하는 점, 즉 물질문명의 변혁에서 수행한 역할에서 찾아볼 수 있음. "짚신을 신는 것이 보통이었던 당시의 민중은 입영해서 처음으로 군화를 배급받아 구두 신는 법을 배웠다." 또한 군대에서의 식사, 특히 육식은 전통적으로 생선만 먹던 일본인들의 식사에 큰 영향을 끼침.
[[문명]]
근대화는 신체도 새롭게 만들 것을 요구함. 제식훈련을 통함. 신체 규율의 첫 단계. 이러한 규율화의 밑바탕에서는 '언어의 표준화'가 작동. '군대어'는 제대 장병들을 통해 일반 사회로까지 전파됨.
[[규율화]][[언어의 표준화]]
일본의 군대에서는 '군대어'가 많은 역할을 함. 공통 언어의 형성이 이루어짐. "전후의 일본어 중에도 특수한 '군대 언어'가 그대로 보통 일본어로 정착해 버린 사례들 있음. '남은 음식'(잔반), '점검'... '처치할 수 없음', '마구 독려하다', '기합을 넣다' 등이 그것임. 현재 한국에서도 통용되고 있음.
[[공통 언어]]
군대는 민중의 삶에 이익과 명예를 주어야 하며, 이것이 더이상 제공되지 않을 때 또는 삶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때, 즉 격렬한 전쟁이 벌어져 전 국민이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상황 등에서는 군대에 대한 민중의 지지는 철회될 것.
일본에서 "징병 검사는 '한 사람의 남자'로 간주되는 조건"이었음. '인생 의례'로서의 의미. 이제 병역을 마친 사람들은 종래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근대의 질서를 체득한 사람으로 간주됨.
[[징병]]
또한 군대생활을 하며 사회적 자연적 특권은 무시되고 계급만이 중요한 일종의 **군대식 평등**을 체험하게 됨. "군대는 복종과 평등성이 조합된 최초의 사회조직". "이러한 평등성이 군대에 대한 민중의 지지를 얻는 것에서 커다란 역할을 해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마루야마 마사오)
군대는 사회적인 신분상승의 통로이기도 했음. "이러한 상등병으로의 강한 진급 희망이 생긴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이른바 '훈장'으로 지역사회 중에 커다란 위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신분상승]]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강화되는 계기인 "러일전쟁 이후의 시기가 되면 고등소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계층이 지역의 민중 가운데 천황제 이데올로기 침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에 속하게" 됨.
"군대와 민중 사이에 형성된 밀접한 관계는 십오년전쟁의 패전 시점에서는 이미 붕괴하고 있었다."
"러일전쟁 이후에는 독자적인 군사 사상과 조직 원리가 군 내부에서 확립되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학적 합리성을 결한 정신주의, 경직된 공격 제일주의와 보병의 총검돌격 만능론, 그리고 극단적인 전군 획일주의** 등등이다."
군대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담지자이자 전파자였으므로 당연하게도 그것은 "천황의 군대"였으며, 러일전쟁 이후부터 이 군대는 민중과 괴리되는 길을 걸었다. '군부'라고 하는 군사 관료기구가 자립적으로 성립되면서 이것이 온 나라를 전쟁 속으로 끌고 들어가게 되었던 것.
우리가 일본 제국 군대의 특징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이 시기에 비로소 확고하게 정립됨. 이 시기 일본 군대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천황의 군대'라는 성격이 철저화되었다는 데에서 찾아야 함. 단적인 사례는 **전범령典範令의 성전화聖典化**.
"일본의 군대가 초기 단계에서 근대화의 추진력이 되어 온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 제도의 확충과 공업화의 진전, 더욱이 민중의 정치적 자각이 고조되면서 군대가 가진 그러한 추진력은 점차로 쇠퇴해 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 **군대는 근대화의 질곡이 되어 갔던 것**이다."
당시 한국은 황군 출신 독재자의 명령에 따른 군대식 조직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성취했으며, 그 유산은 군부 독재가 지속된 1980년대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했고 그때의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은 2000년대까지도 사회 지도층으로 군림하며 폭압적 지배를 일삼고 있다.
[[군대식 조직화]][[군부 독재]]
《책 읽기의 끝과 시작》
1960년대부터 농촌 마을에는 "청년 이장"들 등장. "근대 교육의 이수자들". 한국전쟁 기간 국가의 강력한 국민화 프로그램을 첫 번째로 이수한 세대. 국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자신감과 헌신성 가지고 있었음. 이것 외에 그들의 군대 경험은 "도시성과 근대성을 몸소 체험하는 계기였다." 군대 경험이 한국 근대화에서 일종의 긍정적 적극적 계기로 작용.
[[한국]]
일본 근대에서 군대는 그 이상. "일본의 군대는 전쟁만을 위한 집단이 아니라 일본의 사회구조 전체를 지탱해 온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전戰前의 일본 군대인 '대일본제국육해군'은 무엇보다도 **천황의 군대**였음.천황 이외의 어떠한 정부 기관도 육해군에 관여할 수 없게 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육해군은 점차 정부와 의회에 의한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어, 러일전쟁 이후에는 정치세력화한 독자적인 군부가
산업화의 척도 중 하나는 **도시 거주 인구 비율이 50퍼센트가 넘는가**이다. 영국은 1850년대 도달. 일본은 1930년대, 한국은 1960년대에 이 수준에 도달함. 이들 후발 산업국에서도 폭력성은 여지 없이 드러남. 그 폭력성은 이른바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밀고 나간 독재자들에 의해, 그리고 그 독재자들의 의지를 구현하는 특정 집단에 의해 주입됨.
[[독재자]]
군대에 의한 사회의 근대화는 주로 어떤 측면에서 나타나는가? 그것은 우선 "시간·신체·언어"에서의 급격한 변화로 나타남. "군대는 공장·학교와 함께 인간을 근대적 시간질서에 맞추어 훈련시키는 중요한 장소"였으며, 이는 '생활의 시계화'로까지 이어졌음.
[[규율화]][[근대적 시간질서]]
"군대가 '문명 개화'의 추진력이 되었다고 하는 점, 즉 물질문명의 변혁에서 수행한 역할에서 찾아볼 수 있음. "짚신을 신는 것이 보통이었던 당시의 민중은 입영해서 처음으로 군화를 배급받아 구두 신는 법을 배웠다." 또한 군대에서의 식사, 특히 육식은 전통적으로 생선만 먹던 일본인들의 식사에 큰 영향을 끼침.
[[문명]]
근대화는 신체도 새롭게 만들 것을 요구함. 제식훈련을 통함. 신체 규율의 첫 단계. 이러한 규율화의 밑바탕에서는 '언어의 표준화'가 작동. '군대어'는 제대 장병들을 통해 일반 사회로까지 전파됨.
[[규율화]][[언어의 표준화]]
일본의 군대에서는 '군대어'가 많은 역할을 함. 공통 언어의 형성이 이루어짐. "전후의 일본어 중에도 특수한 '군대 언어'가 그대로 보통 일본어로 정착해 버린 사례들 있음. '남은 음식'(잔반), '점검'... '처치할 수 없음', '마구 독려하다', '기합을 넣다' 등이 그것임. 현재 한국에서도 통용되고 있음.
[[공통 언어]]
군대는 민중의 삶에 이익과 명예를 주어야 하며, 이것이 더이상 제공되지 않을 때 또는 삶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때, 즉 격렬한 전쟁이 벌어져 전 국민이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상황 등에서는 군대에 대한 민중의 지지는 철회될 것.
일본에서 "징병 검사는 '한 사람의 남자'로 간주되는 조건"이었음. '인생 의례'로서의 의미. 이제 병역을 마친 사람들은 종래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근대의 질서를 체득한 사람으로 간주됨.
[[징병]]
또한 군대생활을 하며 사회적 자연적 특권은 무시되고 계급만이 중요한 일종의 **군대식 평등**을 체험하게 됨. "군대는 복종과 평등성이 조합된 최초의 사회조직". "이러한 평등성이 군대에 대한 민중의 지지를 얻는 것에서 커다란 역할을 해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마루야마 마사오)
군대는 사회적인 신분상승의 통로이기도 했음. "이러한 상등병으로의 강한 진급 희망이 생긴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이른바 '훈장'으로 지역사회 중에 커다란 위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신분상승]]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강화되는 계기인 "러일전쟁 이후의 시기가 되면 고등소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계층이 지역의 민중 가운데 천황제 이데올로기 침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에 속하게" 됨.
"군대와 민중 사이에 형성된 밀접한 관계는 십오년전쟁의 패전 시점에서는 이미 붕괴하고 있었다."
"러일전쟁 이후에는 독자적인 군사 사상과 조직 원리가 군 내부에서 확립되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학적 합리성을 결한 정신주의, 경직된 공격 제일주의와 보병의 총검돌격 만능론, 그리고 극단적인 전군 획일주의** 등등이다."
군대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담지자이자 전파자였으므로 당연하게도 그것은 "천황의 군대"였으며, 러일전쟁 이후부터 이 군대는 민중과 괴리되는 길을 걸었다. '군부'라고 하는 군사 관료기구가 자립적으로 성립되면서 이것이 온 나라를 전쟁 속으로 끌고 들어가게 되었던 것.
우리가 일본 제국 군대의 특징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이 시기에 비로소 확고하게 정립됨. 이 시기 일본 군대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천황의 군대'라는 성격이 철저화되었다는 데에서 찾아야 함. 단적인 사례는 **전범령典範令의 성전화聖典化**.
"일본의 군대가 초기 단계에서 근대화의 추진력이 되어 온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 제도의 확충과 공업화의 진전, 더욱이 민중의 정치적 자각이 고조되면서 군대가 가진 그러한 추진력은 점차로 쇠퇴해 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 **군대는 근대화의 질곡이 되어 갔던 것**이다."
당시 한국은 황군 출신 독재자의 명령에 따른 군대식 조직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성취했으며, 그 유산은 군부 독재가 지속된 1980년대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했고 그때의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은 2000년대까지도 사회 지도층으로 군림하며 폭압적 지배를 일삼고 있다.
[[군대식 조직화]][[군부 독재]]